전통적인 세계관에서 전쟁 중 죽음은 ‘비정상적이거나 나쁜 죽음’으로 인식되곤 했습니다. 고향이 아닌 객지에서 맞이하는 갑작스러운 죽음이면서 시신을 수습하지 못하거나 신원을 확인할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전사자가 많아졌습니다. 이제 전쟁 중에 사람이 죽는 일이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의 가치관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전쟁 중의 죽음이 나쁜 죽음인가? 비정상적인가? 그렇다면 이 죽음은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의문이 계속 확산된다면 전쟁을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국가가 위기에 처할 것이 뻔했습니다.

상황의 변화는 새로운 죽음 인식으로 이어졌습니다. 예전에는 ‘정상적-비정상적’, ‘좋은-나쁜’ 죽음만 있었다면, 여기에 ‘공적인-사적인’ 죽음이라는 가치가 생겼습니다. 공적인 죽음이라면 비정상적이어도 정의롭고, 영웅적이고, 성스러운 죽음이 되었습니다. 국가는 새롭게 탄생한 죽음의 가치를 적극 이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아군의 전사는 성스럽고, 정의롭고, 고결하며 적군의 전사는 무가치하고 쓸모없다는 인식을 적극적으로 퍼뜨렸습니다. 즉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한국 뿐만이 아닙니다. 세계 각지에서 지금도 쉽게 찾을 수 있는 현상입니다.

세상의 모든 죽음을 기리며

앞서 설명했듯 지금과 같은 위령과 추도의 방식은 정치적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죽음에 감사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이번 현충일에는 지금의 평화를 만들어준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주목 받지 못한 죽음까지 함께 기려보는 것은 어떨까요? 전쟁이라는 비극 앞에 좋은 죽음과 나쁜 죽음이 어디 있겠습니까. 세상의 모든 죽음은 슬픈 일입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크고 작은 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모든 곳에 평온한 일상이 스며들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