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화에 익숙하지 않은 당신께

2021. 9. 27.

🏵 신화에 익숙하지 않은 당신께

이 메일이 잘 안보이시나요?

시시각각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그럼에도 우리가 한국 신화를 살펴야 이유는

내가 한국에서 살며 이 집단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면

한국 신화의 이야기는 내가 싫어도 어쩔 수 없게 겪을 수 있는 갈등이기 때문이야!

<한국 신화의 중심이자 한국 이야기의 핵심! 한국 신화 여신이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

우리 모두 다같이 한번 들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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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처럼 일하자. 에디터 K의 두 번째 레터, 📖한국 여신의 고민 상담소📖

첫 레터이니 오늘은 개인적 경험으로 이야기를 시작해본다.

고전문학을 공부한 후로 처음 보는 사람에게 나를 소개하면 가장 많이 듣는 말이 “한자 많이 아시겠네요”였다. 내 전공은 한자와 전혀 관련이 없어서 “앗 저는 한자 잘 몰라요😅”라 답하면, 그 다음 질문은 “그럼 판소리 그런 거 공부하시나?”였다. 사람들에게 고전이란 한문과 판소리인 것이다. 하긴 나부터도 대학원에 들어오기 전에는 비슷한 생각을 했으니 이상한 일도 아니다.

그럼 한문도, 판소리도 아닌 고전에는 뭐가 있나? 내가 가장 많이 펼치는 책은 놀랍게도 굿 자료집이다. 거기에는 굿에서 부르는 신화가 적혀있다. 다음으로 많이 펼치는 책은 옛이야기 자료집이다. 총 82권, 도서관 한쪽 책장을 가득 채우는 그 책에는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선녀와 나무꾼> 같은 옛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여기까지 말하면, 마주한 사람들의 눈이 동그래진다. 놀라서 대부분 이렇게 묻는다. “굿이요? 그 무당이 하는 거?” or “옛이야기요? 그 동화책?” 이 레터를 읽는 여러분은 어떤지 궁금하다.

고전이 한문인 이유는 그것들이 글자로 기록된 기록문학이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주로 글을 썼던 양반들이 한자에 익숙했으니 글이 한문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자로 된 글 말고 또 다른 글이 있다. 오랜 시간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이야기, 구비문학이다. ‘구비(口碑)_비석에 새긴 것처럼 오랜 시간 전해온 말’이라는 설명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은 어딘가에 적히지 않고 오랫동안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떠돌다가 빠르면 일제강점기에, 늦으면 1970년대 이후로 기록되었다. 내가 펼치는 책에 적힌 이야기들이 바로 이 구비문학이다.

다양한 제주도 신화가 실려 있는 자료집. 현용준, <제주도무속자료사전>, 2007

기록되지 않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다 보면 당연히 이야기가 쉽게 바뀌게 된다. 사람 세 명만 건너도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는데 언제 처음 만들어졌는지도 모르는 이야기는 하물며 어떻겠나? 그런데 달리 생각해보면, 이런 과정은 약한 자는 살아남을 수 없는 구조이니 지금 남은 이야기는 필요 없는 내용은 사라진 압축된 엑기스, 정수(精髓)라는 결론이 난다. 구비문학은 다수가 동의하고 인정하는 최정예 멤버인 것이다. (전공자는 뽕이 찬다!)

굿에서 부르는 신화 또한 마찬가지이다. 굿·무당으로 대표되는 무속은 우리나라 토착 신앙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생소하지만, 아주 오랫동안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무당을 찾았다. 무당은 이야기를 듣고 찾아온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신화를 골라 굿을 열고 신을 초대하여 고민을 해결해달라 빌었다. 이렇게 불리는 신화는 제자에게, 그 다음 제자에게, 또 그 다음 제자에게 구비전승되었다. 그 과정에서 한국인의 보편적인 문제와 가치관이 남았다.

이야기가 조금 멀리 돌아왔는데 쭉 읽으며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래, 전공자 뽕은 알겠는데 그래서 여신이랑 굿 어쩌고가 무슨 상관인데?” 무속에서 부르는 신화에는 대부분의 신이 여성이다. 여성이 주인공이거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부부가 등장하는 경우 문제를 해결하는 건 99%가 여성이다. 캡틴 마블? 비교할 것도 안된다. 여길 봐도, 저길 봐도 온통 여성 영웅이다. 근데 단군, 주몽 같은 남성 신만 유명하니 속상할 따름이다.

민화 <바리공주도>. 출처 : http://www.nsori.com/news/articleView.html?idxno=6463

시시각각 빠르게 변하는 세상이다. 유행은 갈수록 짧아져 세대 차이가 생기는 간격도 짧아졌다. ‘꼰대, 라떼는 말이야’와 같은 유행어가 있는 세상에 신화의 내용이 저 세상 꼰대들의 이야기로 느껴질 수 있다. (나도 싫어하는 이야기 정말 많다ㅎ) 그럼에도 우리가 신화를 살펴야 이유는 신화 속 문제 상황이 언제든 나에게 벌어질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신화 속 갈등은 한국에서 살며 이 집단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면 내가 싫어도 어쩔 수 없게 겪을 수 있는 갈등이라 생각한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그래도 이 분야를 공부하며 내가 느낀 점은 그렇다.

신화에는 집단이 신성시하는 가치가 담겨있다. 그 신화를 믿는 집단에게 신은 일종의 롤모델인 셈이다. 우리에게 여신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벤져스 속 캡틴 마블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롤모델이 되는 것처럼, 우리 신화 속 여신을 찾아내고 이를 널리 알리는 작업이 필요하다. 한국 신화 속 여신은 당신의 앞길을 응원하는 친구가 되어줄 것이다.

그러니 부디, 관심 가져주시길. 거부감이 드는 내용이 있다면 앞으로는 그 이야기가 바뀔 수 있도록 여러분과 함께 노력하고 싶다. 에디터 K의 한국 여신의 고민 상담소, 많.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