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부터는 본격적으로 산멕이의 시작과 마무리를 함께 보려 합니다. 3번에 나눠서 부정을 치고, 신을 부르고, 신과 놀고, 인간과 노는 과정을 소개합니다.
본격적인 산멕이를 진행하기 이전에 완료되어야 하는 중요한 일들이 있습니다. 가장 큰 일은 바로 산멕이의 날짜를 정하는 일입니다. 날짜는 항상 중요한 문제입니다. 지금도 어르신들은 이사와 같은 큰일을 할 때, 손 없는 날을 고르곤 하십니다. 산멕이를 하는 날짜는 당주댁과 궁합이 가장 좋은 날을 택합니다. 산멕이는 여러 사람들이 참여하는 의례지만 산멕이의 중심이 되는 당주를 기준으로 날짜를 정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당주란 산멕이를 진행하는 대표자이자 가장 우선되는 가정을 당주댁이라고 합니다. 보통 당주댁은 소를 많이 키우거나 여러 모로 권위 있는 분들 중에서 한 가정을 정합니다. 당주댁과의 궁합을 고려해서 날짜를 정하기 때문에 반드시 삼짇날(음력 3월 3일), 단오(음력 5월 5일)같이 이름이 있는 날짜를 고집하지는 않습니다.
산멕이를 진행할 날짜가 정해졌다면, 그 다음 일은 산멕이를 진행할 장소인 제당터를 정리하는 일입니다. 참가자들은 미리 모여서 당주댁을 중심으로 산멕이를 진행할 제당터의 먼지를 쓸고, 돌을 치우며 가장 중요하게는 부정의 출입을 막는 금줄을 설치합니다. 뒤에서도 소개하겠지만 산멕이의 준비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부정을 막는 일입니다.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부정은 단순히 잡스러운 귀신이나 악한 존재를 말하지 않습니다. 부정은 피해야 하는 것, 자리를 벗어난 것 등을 의미하는 개념입니다. 일례로, 산멕이를 하기 위해 집에서 출발한 사람들이 오는 도중 로드킬(roadkill) 당한 고라니를 본다면, 그들은 산멕이 장소에 가지 않고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고라니 자체는 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지만 고라니가 사고를 당하고, 피를 흘리고, 죽음을 맞은 장면은 피해야 하는 하나의 오염물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산멕이에 참여하는 분들은 산멕이에서 중요하게 등장하는 신 중 하나인 군웅신이 기르고 살리는 역할을 하는 신이기 때문에 피와 죽음을 싫어한다고 말합니다. 이런 이유들로 부정을 막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산멕이를 준비하며 제당터에 금줄을 치고 있는 모습
1) 초부정치기
산멕이 당일 아침, 본격적인 의례는 먼저 부정을 막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부정을 막는 일은 매우 중요해서 총 3번에 걸쳐서 부정을 칩니다. 가장 먼저, 제당터가 있는 산의 입구에서 지푸라기에 불을 붙입니다. 불붙은 지푸라기는 매캐한 연기를 뿜습니다. 제수(제사상에 올릴 음식과 물건들)를 등에 진 사람들은 이 지푸라기 위를 왔다 갔다 한 뒤에 산으로 들어옵니다. 이 과정을 처음 부정을 친다는 뜻에서 초부정치기라고 합니다.
초부정치기를 하는 장면, 아래를 보면 불붙은 지푸라기가 깔려 있다.
2) 재부정치기
초부정을 치고 산에 올라오면 또 다시 부정을 칩니다. 제당터에 들어오기 전 앞의 입구에서 사람들은 금줄을 넘어가지 않고 줄을 섭니다. 이렇게 줄 서 있는 사람들과 사람들이 쌓아놓은 제수 상자들 위에 산멕이를 진행하는 집전자(의례를 진행하는 사람)가 악사의 장구소리에 맞추어 소나무와 버드나무가지로 물을 찍어 제물과 참가자들을 때리며 부정을 칩니다. 한국의 민속종교에서 소나무와 버드나무는 복숭아나무, 쑥 등과 함께 종종 부정한 것을 물리치는 식물로 여겨집니다. 이 과정을 다시 부정을 친다는 뜻으로 재부정치기라고 합니다.
금줄 앞에서 재부정치기를 하는 집전자
3) 부정굿
초부정치기와 재부정치기를 마치면 부정이 다 사라졌을 것 만 같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부정굿을 해야지 부정을 막는 과정은 마무리됩니다. 재부정을 친 다음에 사람들은 금줄을 넘어 제수를 들고 들어갑니다. 그리고 각자 자신의 자리에 돗자리를 펴고, 상을 올리고, 제사상을 차립니다. 그 동안 무속인이 제당터의 중심에서 부정을 쫓는 부정굿을 합니다. 이렇게 세 번 부정을 쫒아내야지만 산멕이는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질서에 어긋나고, 신들이 반기지 않고, 사람들이 꺼려하는 부정을 막기 위한 부정치기는 산멕이를 준비하는 데 가장 중요한 과정입니다. 아니, 어떻게 보면 산멕이의 준비과정을 넘어선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라고 말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번 레터에서는 부정을 막기 위해 의례를 준비하며 또 의례 초반에 어떻게 부정을 치는지 함께 보았습니다. 부정을 막는 것은 아주 중요해서 의례의 중심이 되는 당주댁은 산멕이 몇 주 전부터 집 앞에 황토를 쌓아서 부정을 막기도 합니다. 흙, 불, 물, 그리고 노래와 굿을 이용해서 부정을 막으려는 참가자들의 노력은 산멕이를 통해 조상들과 잘 놀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노력이 더해지는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다음 레터에서는 하늘의 신을 부르고, 산의 신들에게 산멕이 왔음을 알리는 모습을 함께 살펴보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