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첫 이야기를 흥미롭게 보셨나요? 이번 레터에서는 직접 산멕이를 보기 전에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눠볼까 합니다. 먼저 산멕이에 대해 진행된 연구와 조사 그리고 현황을 간단하게 정리하고 가면 좋을 성싶습니다. 그리고 함께 산멕이를 살펴보기 전 유의할 점을 두 가지 부탁드리려고 합니다.
먼저 산멕이가 논의된 흐름을 정말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산멕이가 가장 최초로 보고된 시기는 일제강점기입니다. 제국주의 일본은 식민지 조선의 문화와 관습에 대해 수많은 조사 보고서를 남겼습니다. 당시 조선총독부의 지시를 받고 한국의 민속문화를 조사한 대표적인 연구자에는 무라야마 지준(村山智順)이 있습니다. 지준은 산멕이에 대해서도 최초의 근대적인 기록을 남겼습니다. 단순한 보고를 넘어선 구체적인 연구는 1990년대에 들어 시작되었습니다. 김경남은 산멕이의 목적으로 가정의 평안을 기원하고, 소와 가축의 번식이 잘 되기를 바라며, 공동체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장정룡은 이런 이유들에 더해 호환(虎患; 호랑이가 사람을 해하는 일)을 방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들었습니다. 또 김진순과 송화섭은 자손이 잘 태어나길 바라는 자손의 수태를 산멕이의 목적에 포함시켰습니다.
조금 복잡하지요? 이 모든 내용을 기억하지는 않아도 좋습니다. 다만 산멕이의 성격에 대해 다양한 설명들이 있었다는 점만 기억해두시면 좋겠습니다.
또 한 가지 유념해주시길 부탁드리고픈 내용은 산멕이가 사라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앞서 언급한 학자들은 최소 서너 곳의 산멕이를, 많게는 십수 곳의 산멕이를 연구했습니다. 산멕이가 성행했을 시기에는 지리적으로 강원도 영동 지방의 북부에서부터 경상북도 지역까지 퍼져있었고, 매 년 수십 곳에서 산멕이가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전문적으로 산멕이만을 주관하는 무속인 역시 지역마다 여러 명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산멕이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매년 정기적으로 행해지는 산멕이는 한 손에 꼽습니다. 산멕이를 오래 해오신 한 어르신은 “과거에는 성씨 별로 산멕이를 했는데, 이제는 사람들이 없어서 이 동네 저 동네에서 다 모여 진행한다”고 하셨습니다. 아마도 산멕이 역시 시골의 인구감소라는 세태의 변화를 빗겨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멕이는 지금도 지역과 공동체의 힘을 모으는 구심점이 됩니다. 앞으로 제가 소개할 이야기에서 산멕이를 진행하는 터를 지키기 위해, 굴지의 대기업과 맞서 싸우는 영화 같은 사연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아직까지 남아있는 산멕이는 지역의 중심이 되어서 힘을 지켜가고 있습니다. 산멕이의 쇠락과 여전히 남아있는 힘에 대해서도 잊지 말고 앞으로의 레터를 즐겨주시면 좋겠습니다.
다음으로는 산멕이를 살펴볼 때 유의할 몇 가지 점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가장 먼저 종교에 대한 하나의 고정관념 내려놓아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 고정관념은 바로 종교들 사이에 높은 벽을 두는 사고입니다. 예를 들면, 부처님의 생애와 가르침을 매우 좋다고 생각하는 신부님이나 성모 마리아를 모신 무당을 보며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종교 역시 사람들이 삶에서 꾸려나가는 문화의 하나이기에 접촉하고 상호작용하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특정 종교 고유의 모습을 모색하는 시도도 중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원래부터 종교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산멕이를 통해 수많은 종교들의 상호작용을 마주할 테니까요.
또 한 가지는 산멕이를 미신, 비합리라는 시선으로 보지 않아주시면 좋겠습니다. 산멕이 뿐 아니라 모든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 종교는 한 개인이 경험해 온 삶의 궤적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공간이자 방식이기도 하고, 선택의 순간 기준을 세워주는 삶의 지침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익숙하지 않은 표현과 형태를 보고 미신이라고 치부하기보다, 그런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우리 이웃들의 삶에 집중해주시면 좋겠습니다.